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34

출애굽기,
벽돌 굽던 손이
성막을 지은 책

바로의 벽돌을 굽던 종들이
하나님이 머무실 집을 짓는 예배자가 되기까지

출애굽기 1–40장
여는 글

출애굽기는 성경에서 가장 영화 같은 책이에요. 갈대 상자에 담긴 아기, 불붙은 떨기나무, 열 가지 재앙, 갈라지는 바다, 하늘에서 내리는 떡까지. 주일학교에서 한 번쯤 그림으로 다 본 장면들이지요. 그런데 익숙한 장면 사이사이에 히브리어 말놀이와 애굽의 풍경, 그리고 신약으로 곧장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숨어 있어요.

이 책은 벽돌로 시작해서 성막으로 끝나요. 1장에서 이스라엘은 바로를 위해 흙을 이기고 벽돌을 굽는 종이었어요(1:14). 40장에서 같은 백성이 하나님이 머무실 성막을 짓고, 그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요(40:34). 이름 없는 바로와 이름이 남은 산파, 노아의 방주와 같은 단어로 불린 상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 하나님의 손가락, 뼈가 꺾이지 않은 어린 양, “이게 뭐지?”라는 이름의 떡, 그리고 사람이 되어 오신 영광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출애굽기는 어떤 책일까?

종 되었던 백성을 건져 내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야기

출애굽기는 모세오경의 두 번째 책이에요. 교회와 유대교는 전통적으로 모세가 기록했다고 받아 왔어요. 창세기가 요셉의 관으로 끝났다면, 출애굽기는 그 후 수백 년이 흘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1:8)이 일어난 때부터 시작해요. 야곱의 칠십 식구는 큰 민족이 되었지만 애굽의 종이 되어 있었어요.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치시고, 바다를 가르셔서 백성을 건져 내세요. 그리고 시내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 가운데 머무실 성막을 짓게 하세요.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사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에요.

이름의 뜻히브리어 이름은 첫 문장 “이것은… 이름들이니”에서 온 “셰모트”, 곧 “이름들”이에요. “출애굽기(Exodus)”는 칠십인역에서 온 이름으로 “나감, 떠남”이라는 뜻이에요.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눈 “별세” 이야기(눅 9:31)도 헬라어로 같은 “엑소도스”예요.
세 장소, 세 이야기1–18장은 애굽에서 광야까지 건져 내신 이야기, 19–24장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 25–40장은 성막 이야기예요. 마지막 열여섯 장 가운데 열세 장이 성막을 짓는 설계도와 공사 기록이에요.

※ 출애굽이 언제 일어났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나뉘어요. 열왕기상 6:1의 “사백팔십 년”을 따라 주전 15세기로 보는 견해와, 1:11의 “라암셋” 성 이름 등을 근거로 주전 13세기로 보는 견해가 대표적이에요.

출애굽기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하나님이 이름을 알려 주신 책
떨기나무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3:14), 시내산에서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34:6)이라고 자신을 알려 주세요.
2
열 재앙, 신들에 대한 심판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12:12). 누가 참 하나님이신지 가리는 싸움이었어요.
3
유월절, 구원의 첫 절기
어린 양의 피가 발린 집을 죽음이 넘어간 밤. 이스라엘의 달력이 그날부터 새로 시작돼요.
4
구원 뒤에 주신 십계명
계명을 지켜서 구원받은 게 아니라, 먼저 건져 주신 백성에게 사는 길을 주셨어요(20:2).
5
성막으로 끝나는 책
탈출기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장면으로 끝나요(40:34-38).

출애굽기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0:2). 십계명은 명령이 아니라 이 선언으로 시작해요. 구원이 먼저이고, 순종은 그다음이에요. 그리고 그 구원의 밤을 바울은 이렇게 풀었어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이름 없는 바로부터 장막을 치신 영광까지

1

성경은 바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산파 두 사람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

출애굽기 1:1, 15-21 · 2:1-10 · 6:20 · 열왕기상 11:40
애굽의 왕
온 나라를 쥔 권력자. 그런데 출애굽기 40장 내내 그냥 “바로”예요.
VS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1:15). 두 사람의 이름이 또박또박 남았어요.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이름들”이에요. 첫 문장부터 야곱의 아들들 이름을 하나씩 불러요(1:1-5). 그런데 이 “이름들의 책”에서 이상하게도 끝까지 이름이 안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예요. 히브리 아들들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모세와 열 번을 맞붙고, 바다까지 쫓아온 그 왕의 이름을 성경은 한 번도 불러 주지 않아요. 성경에서 이름이 처음 나오는 바로는 한참 뒤 열왕기상의 “시삭”이에요(왕상 11:40).

대신 이름이 남은 사람은 산파 두 명이에요. 바로가 “아들이거든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아이들을 살렸어요(1:17). 바로가 불러 따지자 산파들의 대답이 재밌어요.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1:19). 😄 세상에서 가장 힘센 왕 앞에서 두 여인이 살짝 비틀어 대답한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어요(1:21).

2장도 같은 방식이에요. 모세의 아버지는 “레위 가족 중 한 사람”, 어머니는 “레위 여자”, 누나는 그냥 “그의 누이”라고만 나와요. 이들의 이름은 한참 뒤 6:20에 가서야 나와요. 2장에서 이름을 얻는 사람은 모세 한 명뿐이에요. 세상이 기억하는 이름과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이 다르다는 걸 출애굽기는 첫 장부터 보여 줘요.

※ 출애굽기의 바로가 역사 속 어느 왕인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달라요. 본문이 바로의 이름을 적지 않은 이유도 직접 설명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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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부러워하는 이름보다, 하나님을 경외한 작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두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2

아기 모세가 누운 “상자”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단어였다

출애굽기 1:22 · 2:1-10 · 창세기 6:14 · 히브리서 11:23

바로의 명령은 이것이었어요.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1:22). 모세의 어머니는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기다가 더는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를 만들어요. 그리고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해 아기를 담고 강가 갈대 사이에 두지요(2:3). 따지고 보면 바로의 명령대로 아들을 나일 강에 넣긴 넣은 거예요. 상자에 담아서요. 😄

이 “상자”라는 히브리어 테바는 구약 전체에서 딱 두 곳에만 나와요. 노아의 방주와 아기 모세의 상자예요. 둘 다 역청을 발랐고, 둘 다 사람을 삼키는 물 위에 떠 있었어요. 온 세상이 물에 잠길 때 노아의 가족을 건진 그 “방주”가, 히브리 아들들이 물에 던져지던 때 한 아기를 건졌어요. 그 아기가 훗날 온 백성을 물 가운데로 건너게 해요.

반전은 계속돼요. 아기를 건진 사람은 바로의 딸이에요. 아기를 물에 던지라고 한 왕의 집에서 그 아기가 자라요. 게다가 공주는 친엄마를 유모로 삼고 “내가 네 삯을 주리니”(2:9)라고 해요. 엄마가 자기 아기를 키우면서 월급까지 받은 거예요. 공주는 아이 이름을 모세라 지으며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2:10)고 말해요. 히브리서는 이 모든 일 뒤에 부모의 믿음이 있었다고 말해요(히 11:23). 사람의 명령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조용히 구원을 준비하고 계셨어요.

※ “모세”라는 이름이 애굽어에서 왔을 가능성은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해석이에요. 본문은 히브리어 “건지다”로 그 이름을 설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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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삼킬 것 같은 물 위에서도 하나님이 방주를 띄우시는 분임을 믿고, 오늘 내가 놓인 자리를 그분께 맡깁니다.
3

“내가 누구이기에”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나는 있다”고 대답하셨다

출애굽기 3:1-15 · 마가복음 12:26-27 · 요한복음 8:58 · 18:5-6
모세의 질문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3:11)
VS
하나님의 대답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3:14)

팔십 살의 목자 모세가 호렙 산에서 이상한 광경을 봐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3:2). 하나님이 애굽으로 가라고 하시자 모세가 먼저 묻는 말은 “내가 누구이기에”예요. 재밌는 건 하나님의 대답이에요. “네가 누구냐면…” 하고 모세를 설명해 주지 않으세요. 대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3:12)고 하시고, 자기 이름을 알려 주세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히브리어로는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예요. “나는 있다”라는 말이 두 번 겹쳐 있어요. 누구에게 기대어 있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분,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계신 분이라는 뜻이에요. 헬라어 칠십인역은 이 구절을 “에고 에이미”, 곧 “나는 있다”로 옮겼어요.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님이 이 말을 쓰세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겟세마네에서 “내가 그니라(에고 에이미)” 하시자 잡으러 온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 땅에 엎드러졌어요(요 18:6).

예수님은 이 떨기나무 장면으로 부활도 증명하셨어요.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들에게 “떨기나무에 관한 글”을 가리키시며, 하나님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셨다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덧붙이세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막 12:26-27). 불에 타도 사라지지 않던 떨기나무처럼, 스스로 계신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아요.

※ 떨기나무(스네)와 시내산(시나이)의 소리가 닮았다는 점은 여러 학자들이 주목하는 말놀이예요. 또 “여호와”라는 발음은, 유대인들이 거룩한 이름을 소리 내지 않고 “아도나이(주)”로 읽던 전통에서 두 단어의 글자와 모음이 섞여 생긴 것으로 봐요. 본래 발음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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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이기에” 하고 물러서고 싶을 때, 내 자격이 아니라 “나는 있다” 하시며 함께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4

애굽 요술사들이 손을 들며 한 말,
“이것은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출애굽기 7:10-12, 22 · 8:7, 18-19 · 12:12 · 31:18 · 누가복음 11:20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돼요. 그러자 애굽 요술사들도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어요. 물이 피가 되자 요술사들도 물을 피로 바꾸고, 개구리가 올라오자 요술사들도 개구리를 올라오게 해요(8:7).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웃긴 장면이에요. 온 땅이 개구리로 덮였는데 요술사들이 한 일은 개구리를 더 늘린 거예요. 😄 없애지는 못하고 흉내만 낸 거지요.

셋째 재앙에서 흉내가 멈춰요. 티끌이 이가 되자 요술사들도 해 보지만 못 해요. 그리고 바로에게 고백해요.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8:19). 여기서 “권능”이라고 옮긴 말이 히브리어로는 하나님의 손가락이에요. 애굽 최고의 요술사들이 손을 든 순간이에요. 이 표현은 출애굽기에 한 번 더 나와요.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두 돌판이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31:18), 직역하면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판이에요.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님이 이 말을 쓰세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자 사람들이 바알세불의 힘이라고 수군거렸어요. 예수님은 대답하세요.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여기 “손”도 헬라어로는 “손가락”이에요. 애굽 요술사들이 흉내 내지 못했던 그 손가락이 예수님 안에서 다시 일하고 있었어요. 출애굽기가 말하는 재앙의 목적도 여기 있어요.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12:12).

※ 나일 강이 피가 된 재앙은 나일의 신, 개구리 재앙은 개구리 머리를 한 여신, 흑암 재앙은 태양신을 겨냥했다고 보는 해석이 많아요. 또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말 가운데 하나는 “무겁다(카베드)”인데, 심장의 무게를 다는 애굽의 사후 심판 신앙과 연결해 읽는 학자들도 있어요. 모두 본문 밖 배경에 기댄 해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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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흉내 내는 힘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구별하며, 예수님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가락을 신뢰합니다.
5

달력을 새로 시작하게 한 밤,
그리고 뼈가 꺾이지 않은 어린 양

출애굽기 12:1-13, 22, 46 · 요한복음 19:14, 29, 36 · 고린도전서 5:7

마지막 재앙을 앞두고 하나님은 제일 먼저 달력을 바꾸세요.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12:2). 구원받는 그달이 새해 첫 달이 된 거예요. 종살이하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건져 주신 날부터 인생이 다시 세어져요. 그리고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우슬초 묶음에 적셔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르라고 하세요(12:22).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12:13).

“유월절”의 히브리어 페사흐는 “넘어가다”라는 말이에요. 그날 밤 이스라엘 집이 무사했던 이유는 그 집 사람들이 더 착해서가 아니었어요. 문에 피가 발려 있었기 때문이에요. 또 이 양에게는 이상한 규정이 하나 붙어 있어요. “뼈도 꺾지 말지며”(12:46).

요한복음은 이 규정을 십자가 곁에서 다시 꺼내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었어요(요 19:14). 군인들이 다른 두 사람의 다리는 꺾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숨을 거두셨기에 꺾지 않았어요. 요한은 이것이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요 19:36)는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기록해요. 십자가에서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적셔 올린 것도 “우슬초”였어요(요 19:29). 문설주에 피를 바르던 바로 그 풀이에요. 바울의 한 문장이 모든 걸 정리해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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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것은 내 행위가 아니라 문설주에 발린 피, 곧 그리스도의 피임을 기억하며, 그날부터 새로 세는 내 인생의 달력을 감사합니다.
6

이스라엘은 사십 년 동안
“이게 뭐지?”를 먹었다

출애굽기 16:14-35 · 신명기 8:3 · 요한복음 6:31-35 · 고린도후서 8:15 · 히브리서 9:4

광야에서 배가 고프다고 원망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하늘에서 떡을 내리세요. 아침에 이슬이 걷히자 땅 위에 작고 둥근 것이 서리처럼 깔려 있어요. 백성들이 그걸 보고 서로 물어요. “이것이 무엇이냐”(16:15). 히브리어로 만 후예요. 그리고 그 질문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어요.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16:31).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사십 년 동안 매일 아침 “이게 뭐지?”를 먹은 거예요(16:35). 😄

만나에는 규칙이 있었어요. 하루 먹을 만큼만 거두기, 남겨 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어요(16:20). 그런데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어요(16:18). 바울은 이 구절을 고린도 교회에 인용하며, 넉넉한 사람이 부족한 사람과 나누라고 권해요(고후 8:15). 여섯째 날에는 갑절을 거두고 일곱째 날에는 쉬었어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도 전에, 하나님은 만나로 먼저 안식을 가르치셨어요(16:23).

모세는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대대로 간직하게 했어요(16:33). 히브리서는 이것이 언약궤 안에 있던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라고 말해요(히 9:4). 그리고 수백 년 뒤,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세가 광야에서 떡을 주지 않았냐고 따지자 예수님이 대답하세요.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요 6:35). 광야에서 “이게 뭐지?” 하던 그 떡의 진짜 정체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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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필요한 만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쌓아 두는 불안 대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으로 하루를 삽니다.
7

“주의 영광을 보여 주소서”,
그 영광은 사람이 되어 장막을 치셨다

출애굽기 33:18-23 · 34:6, 29-35 · 40:34-35 · 요한복음 1:14, 18 · 고린도후서 4:6

금송아지 사건 직후예요. 백성은 하나님을 배신했고, 모세는 깨진 돌판 앞에서 중보해요. 그리고 놀라운 부탁을 해요.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33:18). 하나님은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33:20) 하시며 모세를 바위 틈에 두고 손으로 덮으신 채 지나가세요. 그때 들려주신 것은 얼굴이 아니라 이름이었어요.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34:6). 금송아지를 만든 백성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자기소개예요.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어요(34:29). 여기서 “광채가 나다”라는 동사 “카란”은 “뿔(케렌)”과 글자가 같아요. 그래서 4세기 말 히에로니무스(제롬)가 번역한 라틴어 성경 불가타는 이 구절을 “얼굴에 뿔이 났다”는 뜻으로 옮겼어요. 그 영향으로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로마의 모세상 머리에는 작은 뿔 두 개가 달려 있어요. 😄 빛나는 얼굴이 뿔 난 얼굴이 된 거예요.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성막이 세워지자 구름이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해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40:34-35). 그런데 요한복음이 이 장면을 이어받아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거하시매”는 헬라어로 “장막을 치다”라는 말이에요. 모세가 바위 틈에서 등만 보았던 그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환히 드러났어요(고후 4:6).

※ “인자와 진실”(34:6)과 “은혜와 진리”(요 1:14)를 연결하는 것은 요한복음 1:14-18의 흐름(모세, 율법,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음)에서 많은 학자들이 읽어 내는 해석이에요.

돌아보기
금송아지를 만든 백성 가운데 머물기로 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예수님의 얼굴에서 그 영광을 봅니다.
맺는 글
바로의 벽돌을 굽던 종들이
하나님의 집을 짓는 예배자가 되었다

히브리어로 읽으면 출애굽기의 처음과 끝이 한 단어로 이어져요. 1장에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시킨 “고역”(1:14)은 “아보다”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모세가 바로에게 거듭 전한 말씀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7:16)의 “섬기다”도 같은 뿌리예요. 그리고 성막 공사를 다 마쳤을 때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39:42)라고 하는데, 여기 “역사”도 “아보다”예요. 출애굽은 일에서 해방된 이야기가 아니라, 섬기는 주인이 바뀐 이야기예요.

바로를 위한 일은 짚도 없이 벽돌 수만 채우는 고역이었어요(5:7-8). 하나님을 위한 일은 기쁘게 드린 예물로 하나님이 머무실 집을 짓는 예배였어요. 그리고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엑소도스”(눅 9:31)는,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삼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었어요.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29:45)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